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방 안을 채우는 건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와 제 한숨뿐입니다. 지난 명절, 거실을 가득 채웠던 친척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네요. "그래서, 요즘 돈은 좀 모았니? 남들 다 하는 주식이라도 좀 해보지." 그때 저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나 깎고 있었지만, 사실 제 머릿속은 수만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습니다. 저는 주식이 무서운 게 아니라, '돈'이라는 이 지극히 세속적인 가치에 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우리 INFP들에게 돈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이상향을 파괴하는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지곤 하니까요.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함정: "나는 돈 따위엔 관심 없어"

솔직히 말해볼게요. 저는 가끔 제 텅 빈 통장을 보면서 묘한 도덕적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저들처럼 탐욕스럽게 숫자에 매달리지 않아. 나는 더 가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예술이나 인간의 영혼 같은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덕적 결벽증'이 바로 제 투자와 재테크의 가장 큰 맹점(Blindspot)이었습니다. 돈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저는 '돈에 관심 없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사실 저는 돈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돈을 관리할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었던 겁니다.

의미를 찾다 놓치는 기회들: "이 투자가 내 가치관과 맞는가?"

재테크를 시작하려 마음을 먹어도, 저희 인프피들은 꼭 이상한 데서 발목이 잡힙니다. 남들이 수익률을 따질 때, 저희는 "이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지는 않는가?", "이 투자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를 먼저 고민합니다. 물론 가치 있는 고민이지만, 문제는 이 고민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론'으로 끝난다는 겁니다. 세상에 완벽하게 도덕적인 투자는 없으니까요. 결국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기회는 다 떠나가고, 정작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선조차 구축하지 못한 채 새벽마다 불안에 떨게 됩니다. 의미를 찾는다는 핑계로 우리는 자신의 생존을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맺음말: 돈은 영혼의 적이 아니라, 영혼을 지키는 요새입니다

이 긴 새벽의 끝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제 더 이상 돈을 '필요악'으로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돈은 제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꿈꾸는 이 비현실적인 이상들을 현실 세계에서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요새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가장 먼저 잠들어 있던 은행 계좌를 확인해 보려 합니다. 숫자 하나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들이 저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껴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그리고 제 영혼을 진정으로 책임지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요. 모두가 잠든 이 시간, 저와 같은 고민으로 깨어 있는 당신도 부디 자신만의 요새를 차근차근 쌓아나가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INFP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