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까 낮에 확인했던 토익 성적표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단 5점 떨어졌을 뿐인데, 제 인생은 이미 실패한 것 같고, 저는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예민함이 밤새 저를 괴롭히네요. 하지만 진짜 저를 괴롭히는 건 성적표가 아니라, 지금 제 옆에 없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는 늘 우울했고, 무책임했으며, 저를 외롭게 만들었죠.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런 애를 왜 만나?"라고 물었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너희는 몰라. 그 사람의 그 깊은 어둠을 안아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저는 왜 이렇게 병적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만 자석처럼 끌리는 걸까요?
구원자라는 이름의 오만: 상처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저주
솔직히 말해볼게요.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결핍'을 사랑했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들어주고, 그 사람의 망가진 일상을 대신 정리해주면서, 저는 제가 꽤나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졌거든요. 토익 점수 5점 하락에 벌덜 떨 정도로 자존감이 낮은 제가, 유일하게 '권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破碎(파쇄)된 관계 속이었습니다. 제가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을 곁에 두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제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용한 제 자아의 연명 치료였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그 고귀한 발상은, 사실 제 내면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한 가장 화려한 분장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의 '해로운' 평온함: 왜 당신은 평범한 행복을 거부하나
가끔 정말 괜찮은 사람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제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다정한 사람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들을 '지루하다'고 치부하며 밀어버립니다. "우리랑은 결이 안 맞아", "그 사람은 너무 단순해" 같은 핑계를 대면서요. 하지만 진실은 그들의 '건강함'이 저를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결함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제가 '구원자' 노릇을 할 수 없거든요. 저는 대등한 관계에서 오는 적나라한 친밀감을 감당할 용기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고쳐줄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는, 제 민낯이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날까 봐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자꾸만 저를 숨길 수 있는 '문제 있는 관계' 속으로 숨어드는 비겁한 선택을 반복해 왔습니다.
새벽의 휴전 선언: 이제 그만 누군가의 영웅이 되기를 멈추세요
이제 이 지독한 굴레를 끊어야 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영혼을 수리하는 수리공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사랑받고 싶어 하는 한 명의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겠다는 환상을 버리세요. 당신의 사랑은 마법이 아니며, 그 사람은 당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겁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 사람의 곁을 지키는 것이, 그 사람이 스스로 일어날 기회를 빼앗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는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대신, 당신의 떨어진 성적표를 다시 한번 쳐다보세요. 남의 상처를 보듬기 전에, 5점 점수 차이에 피 흘리고 있는 당신의 마음부터 치료해 주세요. 당신은 누군가를 구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밤은 이제 그만합시다. 잘 자요, 당신의 영혼이 부디 평안하기를. /INFP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