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새벽 3시군요. 오늘 낮에 있었던 면접 장면이 머릿속에서 돌비 서라운드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본인의 단점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렸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제 아이디어의 테스트 베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은 우정보다 논리를 우선시해서 주변을 힘들게 하죠." 그 순간 면접장의 공기가 영하로 떨어졌던 그 '갑분싸'의 순간. 저는 왜 늘 이런 식일까요? 왜 남들처럼 적당히 "저는 너무 꼼꼼한 게 단점입니다" 같은 하얀 거짓말을 못 하고, 굳이 내 안의 가장 추악하고 솔직한 진실을 꺼내 보여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선 집에 돌아와 이렇게 고독해질 거면서 말입니다.
그게 ENTP의 비극이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지독한 '인간관계의 섬'에 갇혀 있습니다.
사람들을 '새로운 아이디어'의 마루타로 대하는 나
솔직해집시다. 제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지인'들, 사실 저에게는 그저 제 생각을 시험해보기 위한 하얀 쥐들에 불과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 때,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서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요? 대부분은 방금 떠오른 기막힌 사업 아이디어를 떠들고 싶어서, 혹은 내가 발견한 사회의 모순을 설파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상대방이 제 말에 흥미로운 반론을 던져줄 때는 "너랑 대화하면 영감이 샘솟아!"라며 최고의 친구인 양 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연애 고민이나 지루한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저는 빛의 속도로 흥미를 잃고 딴짓을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내 뇌를 자극해주는 그 '효用'을 사랑했던 것이죠.
'간파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만든 회전문
왜 저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할까요? 그건 제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게 될까 봐 무서워서입니다. 누군가 제 곁에 오래 머물게 되면, 제 화려한 입담 뒤에 숨겨진 지독한 게으름과 자아비판,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어린아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관계가 깊어지려 할 때마다 일부러 논쟁을 일으키거나, '나랑은 안 맞아'라며 먼저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회전문' 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저는 제가 자유롭다고 착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새벽에 남은 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잠가버린 텅 빈 방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솔직한 ENTP'로 살아남는다는 것의 피로감
'정(情)'과 '눈치'의 나라에서 저희 같은 인간들은 늘 돌종 취급을 받습니다. 예의보다는 진실이, 체면보다는 효율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그 대가는 지독한 '소외'입니다. 부모님과 공무원 시험 문제로 한바탕 하고 식어버린 국밥을 먹을 때, 저는 제 논리가 맞았다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왜 가슴 한구석이 이토록 시린지는 도무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똑똑함이 저를 지켜줄 방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를 가두는 감옥이었던 겁니다.
이제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네요. 내일의 저는 다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똑똑한 척하며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저와 같은 ENFP라면, 우리 오늘만큼은 조금만 솔직해집시다. 우리에겐 '새로운 자극'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요. 물론 그 사람을 찾기 위해 저는 내일도 또 누군가와 피 튀기는 토론을 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결론 따윈 없습니다. 원래 인생은 논리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오늘 밤, 이 고독을 견뎌낸 저와 당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잘 자요. 아, 이미 아침인가요? 합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