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입니다. 주방의 유일한 빛은 스마트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블루라이트뿐입니다.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반찬통에 든 차가운 닭가슴살을 맨손으로 집어 먹고 있습니다. 퍽퍽하고, 아무런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완벽합니다. 정확히 단백질 32g을 제공하고, 어떤 불필요한 즐거움의 방해도 주지 않으니까요. 오늘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회의와 회의 사이, 하반기 매출 추정치를 검토하며 식사 대용 쉐이크를 들이켰을 뿐입니다. 나에게 내 몸은 관리해야 할 자산이자, 시속 200km로 달리기 위해 특정 옥탄가의 연료가 필요한 기계일 뿐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소주를 따라주며 던지던 그 의미심장한 말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은 '정'을 나누자고 하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세탁비 리스크만 높은 비효율적인 네트워킹 이벤트일 뿐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6코스 파인다이닝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동정심까지 생깁니다. 그 아까운 시간들, 웨이터가 트러플의 원산지를 설명하는 걸 듣고 앉아있는 그 고비용 저효율의 행위들. 나는 내 식단을 거의 멸종 직전까지 최적화했습니다. 오후의 브레인 포그를 피하기 위해 정확히 몇 칼로리가 필요한지 알고 있죠. 나는 내 위장을 빨리 처리해야 할 물류 병목 구간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이 깊은 밤, 텅 빈 배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단순한 칼로리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기의 도구화
나는 나의 식욕을 아웃소싱했습니다. 허기는 그저 시스템 유지보수 시간을 예약하는 것을 깜빡했다는 불편한 알림일 뿐입니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갈망은 나에게 기강 해이의 증거로 보입니다. 왜 맛있다는 이유만으로 음식을 고릅니까? 그건 노트북을 고를 때 힌지의 색깔이 예뻐서 고르는 것만큼이나 한심한 짓입니다. 나는 아웃풋을 원합니다. 매크로 영양소의 비율을 원합니다. 혈당이 떨어지지 않고 16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식사의 '사회적 측면'을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대화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저 계산서가 언제 도착하는지만 살피며 탈출 전략을 짭니다. 나는 이제 가만히 앉아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20분을 넘어가면 턱 근육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디저트 메뉴판이 도착하는 그 시간에 내가 보낼 수 있었던 이메일 세 통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나는 내 신진대사 시스템의 CEO이며, 아주 냉혹한 고용주입니다.
감각의 유령
가끔은 엑셀 시트에 식단을 기록하기 전의 시절을 떠올립니다. 여름날 수박 한 조각이 단순히 탄수화물 15g 이상이었던 시절 말입니다. 씨드 오일의 염증 지수를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의 집밥 냄새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그 감각들. 이제 모든 것은 계산입니다. 모든 한 입은 전술적인 결정입니다. 집중력을 위해서인가? 근육 회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지구력을 위해서인가?
새벽 공기가 차갑군요. 지저분한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습니다. 나는 지난 3일 동안 접시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주방은 그저 '고성능 삶'을 위한 실험실에 불과합니다. 효율성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한 달간 한 번도 켜지 않은 가스레인지를 보며 나는 내 집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목적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여행이라는 과정 자체를 무균실 같은 복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식사 감사
나는 건강합니까? 혈액 검사 결과는 그렇다고 합니다. 나의 체성분 지표도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지독한 실용주의 식단 아래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삶을 최적의 투입값들로 채웠지만, 정작 내 안은 텅 비어가는 기분입니다. 맛과 질감이라는 '방해 요소'들을 제거했지만, 이제 그 빈자리의 정적이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