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방 안의 유일한 빛은 스마트폰의 희미한 잔상뿐입니다. 방금 막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친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우리가 얼마나 당신을 믿고 있는지... 그전 한 시간 동안은 단톡방에서 벌어진 사소한 오해를 중재하느라 애를 썼죠.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말합니다. "역시 너밖에 없어", "너는 정말 우리들의 태양이야", "너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해져." 나는 웃으며 하트 이모티콘과 응원 문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엎어두고 불을 끄는 그 순간, 블랙홀 같은 공허함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집어삼킵니다. 어둠 속에 누워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정작 나는 누구지?'
사랑을 '노동'으로 만들고, '설렘'을 잊어버린 나
연애를 할 때도 나는 어느새 '서비스 제공자'가 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심코 지나가듯 말했던 과자를 기억했다가 온 동네를 뒤져 사다 줍니다. 그가 불안해할 때면 나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오직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그를 안아줍니다.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를 태워 남을 비추는 것만이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나는 그에게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졌던 적이 언제였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유능한 나', '배려심 깊은 나'가 아니라, 말 한마디 못 할 정도로 무너져서 그저 품에 안겨 울고 싶은 '진짜 나' 말입니다. 사랑을 완벽한 관리 시스템으로 만든 대가로, 나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의 아이를 죽여버린 것 같습니다.
'필요한 존재'라는 마약에 중독된 영혼
솔직히 인정합니다. 나는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에 중독되었습니다. 누군가 "너 없으면 정말 어쩔 뻔했어"라고 말할 때 느끼는 그 찌릿한 존재감은 그 어떤 마약보다 달콤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상처받은 사람, 방황하는 사람,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을 내 사랑으로 고치고, 바로잡고,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정말로 치유되고 강해져서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낍니다. 나는 대등한 관계를 맺는 법을 모릅니다. 대등한 관계에서는 내가 희생을 통해 지배권이나 안전함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영혼의 부서진 틈을 마주하기 무서워서, 남들의 영혼을 수리하는 일에 집착해 온 게 아닐까요?
그림자도 햇볕을 쬐고 싶지만, 태양은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 8시, 나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두가 사랑하는' 따뜻한 가면을 쓰고 집을 나설 겁니다.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태양이 될 것이고, 모두를 따뜻하게 비출 겁니다. 아무도 오늘 밤 내가 벽을 보고 흘린 눈물을 알지 못할 것이고, 내가 얼마나 목말라하는지도 모를 겁니다. 사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닙니다. 내가 희생을 멈췄을 때, 내가 더 이상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때, 이 세상에 내 자리가 남아있을지가 두렵습니다. 내가 이 텅 빈 껍데기만 남았을 때도, 누군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수고했어, 오늘은 내가 널 챙겨줄게"라고 말해줄까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내일은 또다시 시작될, 모두를 위한 따뜻하고 숨 막히는 연극을 위하여. /ENFJ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