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자격증 시험 준비해야 하는데, 유튜브에서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봤다. 군 제대 후 6개월 만에 연매출 1억 달성, 이런 식의 영상. 댓글은 "와, 천재네", "나는 왜 못할까", "결국 본인이 문제"로 가득 했다. 그리고 넌 울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자기가 정말 안 되는 거. 그게 운이 아니라 능력이 없는 거. 증명받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까 자격증 공부는 또 미뤄졌다.

"열심히 하면 되"의 마지막 유혹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이 말을 백만 번 들었을 거다. "하면 된다." "열심히 해봤냐." "너는 할 수 있어."

처음엔 희망처럼 들렸다. 문제 해결의 방법처럼. 너만 충분히 노력하면, 너만 충분히 똑똑하면, 너만 충분히 헌신하면 모든 게 풀린다고. 이건 공평한 세상의 약속처럼 들렸다.

그런데 넌 아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을. INFP는 충분히 노력한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열심히 한다. 처음엔.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깨닫는다. 성공과 실패가 가져올 둘 다의 무게를.

실패를 받아들이는 건 쉬워. 실패는 이미 예상했던 거니까. 실패는 네가 맞았다는 증거이고, 실패는 안전하다. 실패로부터는 도망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성공은?

성공 이후의 공허함

성공하면 끝나는 거다. 최소한, 이 성공이 끝나면 더 큰 다음 성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자격증을 따면? 좋다. 그 다음엔? 좋은 회사를 가야 하나? 그 회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하나?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한가?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 거야? 어디까지가 "충분히 좋은" 거야?

한국 사회가 넌에게 말하는 건 이거다: 계속 뛰어. 멈추지 마. 옆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이전 버전의 너보다.

그리고 넌, 이미 너무 잘 안다. 이 레이스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시작하지 않는다. 또는 시작했다가, 중간에 깨닫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하고 멈춘다.

자기계발 영상의 미니언

새벽 2시의 슬픈 진실은 이거다. 넌 자격증을 준비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성공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아마. 넌 충분히 똑똑하고 충분히 성실하니까.

하지만 그 다음이 무서운 거다.

그 다음엔 더 높은 곳이 있을 거고. 더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있을 거고. 더 이상 "노력이 부족했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거다. 그럼 넌? 넌 어떻게 할 거야? 그때 실패하면? 그때는 "노력 부족"이 아니라 "너는 정말 이 정도"라는 증명이 되는 거야.

그래서 시작하지 않는다. 하지 않음으로써 증명을 피한다.

새벽 2시의 위안

자격증 떨어지는 상상을 하는 게 아니야. 떨어진 후를 하는 거다. 떨어진 후에 "역시 난 안 돼", "해도 안 돼"라고 할 때 느껴질 그 안도감. 그 명확함.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게 더 명확하거든.

유튜브 영상은 계속 올라올 거다. 댓글도 계속 달릴 거다. "너는 왜 못해"라고. 그리고 넌 대답하고 싶을 거다. "내가 못 해서야. 열심히 안 해서."

이게 쉬운 답변이야. 다른 거보다.

넌 알고 있다. 이게 악순환이라는 것. 하지 않으므로 모르고. 모르므로 더 두렵고. 두려우므로 더 안 하고. 이 루프의 입구를 몇 번이나 봤는데,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들어가면, 성공도 가능해지고, 그럼 성공의 책임도 생기고, 성공 이후의 더 큰 성공의 무게도 견뎌야 하니까.

그게 한국에서 INFP로 산다는 거다. 선택지가 두 개다:

하나는 뛰어. 계속. 끝날 때까지. 아니면 그냥 여기서 멈춰. 최소한 여긴 익숙하니까.

새벽 2시에 넌, 유튜브를 닫는다. 자격증 교재도 안 본다. 그냥 누워있다. 울지도 않는다. 이미 울었으니까.

내일도 또 자격증 공부를 안 할 거다. 그리고 그게 맞다는 걸 너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성공은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테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알 거다. 이 느낌. 이 새벽의,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절망감을 말이야.

적어도 우린 혼자가 아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자격증을 안 따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다.

그게 위안이 되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