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ESFP, 당신은 밝고 쾌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타인의 관심을 먹고 사는 '감정적 기생충'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 당신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내뱉는 농담, 당신의 화려한 옷차림, 심지어 당신의 눈물까지도 모두 '나를 좀 봐달라'는 처절한 구애 신호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면접장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본인의 단점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당신은 짐짓 솔직한 척하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대답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소신이라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그 질문마저 당신을 돋보이게 할 '무대'로 이용하려 했던 계산된 도박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당신의 연극에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박수를 쳐주지 않습니다.

증거 1: 자극 없이는 1분도 견디지 못하는 지적 허기

당신은 침묵을 참지 못합니다. 단톡방이 조용해지면 아무 의미 없는 이모티콘이라도 던져서 반응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가 당신을 비껴가면, 당신은 즉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무리한 농담을 던지고, 남의 말을 끊고, 주제와 상관없는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습니다. 이것은 배려 없는 오만함이며, 타인을 당신이라는 연극의 관객으로만 취급하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좋아할 뿐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자주 말하는 '우정'과 '사랑'은 사실 당신의 도파민 수치를 높여줄 일회용 건전지에 불과합니다.

증거 2: 한국적 '흥(興)'으로 포장된 내면의 황무지

당신은 늘 즐겁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내면의 평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이붓는 자극으로 만든 인공적인 흥분 상태입니다. 당신은 혼자 있는 시간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혼자 있을 때 들려오는 내면의 조용한 목소리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 목소리는 당신에게 말하죠. "너는 속이 텅 비어있다"라고. 그래서 당신은 술자리를 만들고, 클럽에 가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납니다. 한국 사회의 '회식 문화'나 '정'의 개념은 당신에게 아주 훌륭한 은신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불이 꺼지고 모두가 떠난 뒤의 그 지독한 공허함은 술로도, 새로운 만남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최종 선고: 무대의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고독입니다

본 법정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당신은 평생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모습은 화려한 SNS 사진 뒤로 숨어버렸고, 이제는 당신 자신조차 진짜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관심이라는 마약은 마실수록 갈증을 유발합니다. 언젠가 당신의 재치가 식상해지고, 당신의 유머가 낡아버리는 날, 그제야 당신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박수를 치던 그 수많은 손이 사실은 거울 속의 환상이었다는 것을요. 지금 당장 남의 인스타 스토리를 넘기는 그 손가락을 멈추고, 당신 안의 그 황무지를 똑바로 쳐다보십시오. 그 황무지를 일구지 않는 한, 당신의 인생은 영원히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는 구차한 연극으로 끝날 것입니다. 판결 종료. 퇴정하십시오. 합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