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45분입니다. 집 안을 감싸는 적막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저는 침대 맡에 앉아 스마트폰의 희미한 불빛을 보며, 단톡방의 수많은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처음으로, 거울 속의 저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수호자'라고 불러왔습니다. 모든 기념일을 챙기고, 갈등을 피하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깨닫습니다. 제가 말하는 '평화'는 사실 타인의 현실을 지우고 제 버전의 진실을 강요해서 얻어낸 산물이었다는 것을요.
ISFJ인 저의 기억은 고화질 녹화기와 같습니다. 저는 당시의 단어, 어조, 심지어 공기의 흐름까지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데이터를 무기처럼 사용합니다. 누군가 저의 잘못을 지적하려 할 때, 저의 상대방 기분을 먼저 챙기려는 본능은 즉각적으로 '화합의 위기'를 감지합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사과하는 대신, 상대방의 기억을 조금씩, 아주 차분하게 수정합니다.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저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행동을 하겠어?"
"ㅎㅎ" 뒤에 숨긴 가시 돋친 방어
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단톡방에서는 "ㅎㅎ"를 연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에게 줄 점수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때때로 저는 익명 커뮤니티에 친구나 연인의 험담을 올리며 '피해자'인 척 행동하기도 합니다. "제가 너무 호구인가요?"라는 글을 올리고 위로를 받을 때면 기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저는 인생의 관찰자인 것처럼 냉소적인 밈을 공유하며 쿨한 척 행동하지만, 사실 저는 그 누구보다 집착하고 조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냉소와 거리두기는 저의 방어 기제일 뿐입니다. 제가 '상관없는 척' 행동하면, 제가 저지른 감정적 상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는 저의 '선함'을 무기화합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제가 도덕적 우월감을 쥐고 흔드는 인질극과 같습니다. 저는 제가 해온 '희생'을 방패 삼아 모든 책임을 회피합니다. 성인군자인 척 제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며, 실제로는 아주 예의 바른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편집자
저의 이성적인 판단은 아주 차갑고 치밀한 편집자입니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감정들을 걸러내어, 언제나 제가 '희생자'나 '성자'로 남을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연인에게 그들의 화가 그저 '예민함'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저의 교묘한 수동공격적 행동은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으로 포장했죠.
조금 전 보낸 메시지를 다시 봅니다. "ㅎㅎ 괜찮아요, 전 다 이해해요." 이 짧은 문장은 사실 상대방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고 정교하게 계산된 철수 신호였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차가운 침묵을 견디다 못해,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사과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야 제가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저의 기억과 상대방 기분을 먼저 챙기려는 본능이 상호작용하는 가장 어두운 단면입니다. 제가 항상 '손해 보는 사람'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괴한 사회적 계약의 수정 작업이죠.
어둠 속에서 마주한 민낯
화면이 꺼지고, 새까만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을 봅니다. 이제 멈춰야 합니다. 제 기억이 아무리 선명하다 해도, 그것 역시 저의 편견이라는 필터를 거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화합에 대한 갈망이 타인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제가 틀렸다는 사실이 제 정신의 완벽한 지도를 망가뜨릴지라도, 상대방의 진실을 존중해야 합니다.